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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후기

체르노빌 HBO 미드 후기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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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HBO 미드 후기

미국 HBO에서 방영한 체르노빌을 봤다. 

총 5부작이다.

시청률도 잘 나오고 평도 좋다고 해서 꽤나 기대하고 본 드라마다.

 

체르노빌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현 우크라이나)에 있는 한 도시의 이름이다.

미드 체르노빌은, 1986년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원자력 발전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래부터는 스포입니다!)

체르노빌 1화에서는 곧바로 사고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1화는 끝날 때까지 절망만을 보여준다.

보통의 이야기에서는 일말의 희망을 보여주고, 보통의 관객들은 그 작은 희망을 기대하며 이야기 속 인물과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1화에서는 체르노빌 사건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절망만을 보여준다.

체르노빌 사건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우리는 죽음으로 끌려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연민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들이 죽거나, 혹은 심각한 질병에 걸릴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사고를 대하는 발전소의 직원들, 화재를 진압하러 온 소방관들, 호기심으로 화재를 구경하는 어른들과 해맑게 뛰어노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미드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나는, 이런 절망적인 드라마를 계속 봐야 되나, 생각했었다.

그만큼 1화는 절망적인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이 시작부터 자살을 하고 있으니...

 

게다가 원전 사고는 폭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고로 인해 발생된 독성 물질은 대기 중이나 땅 속의 지하수를 통해 퍼져 나가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태평양까지 흘러간다면 전 지구적인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2화에서는 일말의 희망이 생긴다.

소수의 지성인들이 등장한 것이다.

발레리와 보리스, 보리스와 울라나

주인공인 발레리 레가조프, 울라나 코목, 보리스 셰르비나다.

발레리 레가조프와 보리스 셰르비나는 실존인물이고,

울라나 코목은 드라마를 위해 가공된 인물이다.(어쩐지 기자처럼 취재하고 다니고 너무 다방면으로 알고 있다 했다)

보리스는 소련의 권력자 중 한 명이고, 발레리와 울라나는 과학자이다.

보리스를 비롯한 권력자들은, 사건을 축소하려는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는) 인물들의 보고만 믿고서, 안일한 태도로 사고를 막으려 한다.

여기에 발레리와 울라나가 나서서 이 사건이 얼마나 큰 재난인지 권력자들을 설득하려 한다.

권력자인 보리스는 과학자인 발레리를 무시하지만, 차츰 핵 재난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3화에서는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나온다.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을 자처한 발레리와 올라나는,

오히려 국가로부터 감시를 당하고 체포를 당하기까지 한다.

핵 발전소 화재 현장에 진입되었던 소방관은 점차 죽어가고,

그의 아내는 그런 남편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다가간다.

남편을 면회하려는 아내에게 간호사는 혹시 임신했느냐고 묻고, 아내는 망설이다가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무엇을 앗아갔는지를 알려주기 위한 복선이다.

또 사고 현장에 투입된 광부들은 그곳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보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광부들은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

 

4화에서는 사고에 노출되었던 사람들, 그리고 사고를 막기 위해 투입된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준다.

드라마 초반에, 발레리는 당장 있을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해 세 명의 발전소 직원 투입을 요청한다.

그 요청을 쉽게 꺼내지는 못한다. 그 요청에 의해 투입된 발전소 직원은 일주일 내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그랬던 발레리는, 사고 현장에 투입된 독일제 로봇이 계속 망가지자, 바이오 로봇을 투입하면 된다고 말한다.

바이오 로봇은 사람이다. 세 명의 죽음 앞에서도 망설이던 발레리는 수백 명의 목숨을 희생하라 하고, 이후에는 수십만 명의 지원을 요청하기까지 한다.

 

또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투입된 한 청년이 나온다.

청년의 임무는, 도시에 남아 있는 반려견들을 사살하는 것이다. 

원전에 노출된 동물들이 어떤 질병을 옮길지 모르기에, 애완동물이든 야생동물이든 모두 폐기되어야만 한다.

업무 중에 술을 안 마신다는 청년은, 처음으로 개를 죽인 뒤에 술을 마신다.

그리고 시멘트에 묻히는 개들을 보면서는 담배를 태운다.

 

담배는 이 드라마에서 핵 재난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담배를 피우면 압 발생률이 높아진다. 원전 사고에 노출된 사람들처럼 말이다.

지금이야 담배가 발암물질이라는 걸 알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들은 너도 나도 담배를 피워댄다.

핵 재난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당시 사람들은 원전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담배는 태우고 나면 원전 화재 사고처럼 재를 남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내 해석이 과장된 것일 수도 있지만,

체르노빌에서는 담배꽁초, 재떨이, 너저분한 담뱃재를 의도적으로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어쩌면 핵 재난과 담배의 이미지를 결합해, 담배의 해악성을 심어주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5화에서는 핵 재난이 왜 일어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얘기한다.

 

폭발 사고가 일어나기 12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체르노빌 발전소는 하나의 실험을 준비 중이었다.

실험을 진행하면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력량이 줄어들고, 야근을 해야 되는 공장에 전력이 부족해진다.

이에 윗선에서 전력량을 줄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발전소장은 실험을 중지할까 고민하지만, 현장 책임자인 디아틀로프는 10시간 뒤에는 실험을 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문제들이 하나씩 일어나기 시작하고, 드라마는 디아틀로프의 잘못을 끊임없이 들추어낸다.

시작부터 디아틀로프가 나쁜 놈이라는 녹음 테이프가 재생됐으니, 그가 잘못한 것만은 명백하다.

그러나 디아틀로프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그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원자력 발전소의 설계가 잘못됐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발레리는 보리스와 울라나로부터 용기를 얻어, 설계의 잘못을 폭로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국가의 잘못을 폭로한다는 건 죽음을 각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부는 발레리의 폭로를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발레리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킨다.

발레리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정부와 KGB를 고발하는 녹음 테이프를 남기고 자살을 한다. 

그 녹음 테이프로 인해 소련의 과학자들은 원자력 발전소의 설계 변경을 요구하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발레리는 자살을 하는 1화의 장면부터 시작해, 5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거짓말`에 대해서 말한다.

거짓말은, 자신의 잘못을 축소시키려는 디아틀로프의 거짓 증언, 그리고 정부의 사실 은폐 등,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체르노빌 핵 재난은 인간의 거짓말로 벌어진 것이고, 

또 다른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그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되고 믿어선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원자력 발전소가 안전하다는 현대의 국가들과, 그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하는 일침 같기도 하다.

 

소방관의 아내는 아기를 출산하지만, 아기는 얼마 못 살고 사망한다.

울라나가 말하길, 뱃속의 아기가 엄마 대신해서 방사선을 흡수했다고 한다.

이는 권력자들로 인해 미래(아기)가 희생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직접 현장에 뛰어든 보리스는 피를 토하고 1년 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그런 보리스의 손 위로 작은 애벌레가 기어 올라온다.

이는 희생한 사람들로 인해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화 예술은 사회에 교훈을 줘야 할 책임이 없다는 의견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런 훌륭한 드라마를 보면 인간의 거짓말과 재난이 위험하다는, 진실 하나를 상기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체르노빌로 관광 간다는 사람들,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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